생략된 맥락이 부르는 소통의 엇박자
토론하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서로 다른데도, 같다고 착각한 채 대화를 시작하면 소통이 어긋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친구와의 일상 대화든, 업무 회의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괄호'를 생략한다. 여기서 괄호란, 상대방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전제하거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거라고 믿는 숨은 맥락을 뜻한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생긴 일이다.
친구가 갑자기 "나 복싱 배우고 싶어!"라고 말했다. 아마 친구의 마음속 괄호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친구 :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데 복싱 같은 운동으로 활력을 되찾고 싶어) 나 복싱 배우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 맥락을 읽지 못하고 "너 평소에 운동도 안 하는데 무슨 복싱이야?"라며 핀잔을 주고 말았다. 친구의 괄호 안 메시지를 센스 있게 알아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상대방이 그 괄호 속 이야기를 함께 꺼내준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업무 회의에서의 에피소드도 있다
간편결제 시스템을 개발하며 파트너사를 물색 중이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VAN사와의 협업이 필수적이었다. 한 직원이 대표님께 A업체를 파트너사로 제안했는데, 대표님은 의외로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이셨다. "왜 하필 A업체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계속 동문서답만 오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표님은 A업체를 단순한 SI업체로만 알고 계셨던 것이다. 실제로 A업체는 SI 사업과 VAN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회사였다. 직원은 대표님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아실 거라 생각하고, 괄호 안의 중요한 정보를 생략한 채 제안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생략하는 괄호 안의 메시지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열쇠가 될 때가 많다. 상대방이 당연히 알 거라는 가정을 버리고, 맥락을 충분히 공유할 때 비로소 대화가 맞물려 돌아간다.
아는 것을 드러낼 때 시작되는 진짜 대화
하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전략이 있다. 상대방이 괄호를 열어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먼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주짓수 배우고 싶어"라고 했을 때, "아, 요즘 스트레스 많다고 했잖아. 운동으로 풀어보려는 거야?"라고 내가 파악한 맥락을 먼저 보여준다면 어떨까. 그러면 친구도 자연스럽게 괄호를 열고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업무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A업체를 제안드리는데요, 제가 알기로 A업체는 SI업체로만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이라고 시작했다면, 대표님도 "아, 그것만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업도 하나?"라며 자신의 이해 수준을 드러내셨을 것이다.
내가 가진 정보의 지도를 먼저 펼쳐 보이면, 상대방도 자신의 지도를 꺼내 놓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 어디서 출발해야 할지 알게 된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상대방도 안심하고 괄호를 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훨씬 더 깊고 정확한 소통으로 이어진다.
결국 좋은 대화란, 서로의 괄호를 여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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