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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기획/전략

관성 탈피_첫 번째 방패부터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데이터는 달랐다

by haevoler 2025. 10. 15.

당연함의 함정

경계의 밤

경계지역 너머로 또다시 울려퍼지는 굉음. 발작버튼 괴물들이 밤마다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는 이제 이 도시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마법방패가 배치된 지 벌써 삼 년째, 초반의 공포는 무뎌졌지만 방패를 지키는 일은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었다.

경찰청 마법방패 관제실에서는 포코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십 개의 방패가 순서대로 늘어선 그래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녹색, 녹색, 녹색… 다행히 오늘도 모두 정상이다.

"포코 씨, 업그레이드 회의 시간입니다."

동료의 목소리에 포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마법 개발팀의 크로우와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당연한 계획

회의실에 들어서자 크로우가 이미 와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마법 개발팀에서 가장 실력 있는 마법사 중 하나인 크로우. 하지만 그 능력에는 대가가 따랐다. 업그레이드 마법 한 번에 일주일의 체력 회복이 필요했다.

"경계지역 앞에서부터 뒤까지 방패는 총 십 개가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크로우가 홀로그램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업그레이드 마법은 한 방패에만 쓸 수 있고, 다시 쓰려면 일주일의 체력 회복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패부터 업그레이드를 시킬까요?"

포코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 자명한 답이었다.

"그야 당연히 경계지역 제일 앞에 있는 방패부터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겠죠?"

크로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전방부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당연한 순서였다.

균열

출장을 떠난 크로우로부터 첫 번째 업그레이드 완료 보고가 왔다. 순조로웠다. 포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틀 뒤, 경찰청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포코 기획자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괴물들이 첫 번째 방패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방패를 더 많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충격량이 기준치를 넘고 있어요!"

포코는 황급히 대시보드를 열었다. 실시간 공격 데이터가 그래프로 펼쳐졌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보았다. 히스토리 탭을 열자, 지난 석 달간의 데이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첫 번째 방패: 평균 공격 빈도 하락세
두 번째 방패: 평균 공격 빈도 상승세
세 번째 방패: 평균 공격 빈도 급등

"아니, 한참 전부터 평균적으로 첫 번째 방패는 공격을 덜 받고 있었네?"

포코의 손이 떨렸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확인하지 않았던 것. 그것이 균열의 시작이었다.

필살기의 대가

크로우에게 긴급 연락이 갔다. 그는 주저 없이 결단을 내렸다.

"필살기를 쓰겠습니다."

필살기. 연속으로 여러 방패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 하지만 그 대가로 크로우의 생명력은 급격히 소진된다.

두 번째 방패에 푸른 빛이 쏟아졌다. 이어서 세 번째 방패로. 크로우의 손에서 마법진이 타오르고, 그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져나갔다.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왔을 때, 포코는 화상통화로 크로우의 모습을 보고 숨을 멈췄다. 그는 벽에 기댄 채 가까스로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도 그는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업그레이드만 다 마치면 저는 꼭 휴가를 길게 가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크로우는 체력 회복실로 향했다. 화면이 꺼진 후에도 포코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깨달음

밤이 깊었다. 관제실에는 포코 혼자만 남아 있었다. 모니터 속 십 개의 방패가 여전히 녹색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지난 회의를 떠올렸다. "그야 당연히 경계지역 제일 앞에 있는 방패부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의심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

데이터는 그곳에 있었다. 석 달 전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괴물들의 공격 패턴은 변화하고 있었다. 최전방이 아니라 그 뒤를 노리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그 신호를 그는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

포코는 새 문서를 열었다. 타이핑을 시작했다.

"업그레이드 프로토콜 개정안: 모든 주요 의사결정 전, 최소 석 달간의 데이터 검토를 필수 절차로 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가정일수록, 더 철저히 검증한다."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체력 회복실에서는 크로우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면, 그와 함께 남은 방패들을 제대로 된 순서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이번에는 데이터를 먼저 보고.
이번에는 당연함을 의심하고.

포코는 문서를 저장하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실수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도, 중요한 문제를 앞두곤 다시 한 번 체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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