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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기획/전략

숲을 보자_내 기능만 보지 말고 다른 도메인 정책까지 고려하자

by haevoler 2025. 10. 15.

균형의 마법사

새로운 프로젝트

라무는 자신이 만들 파이어볼 마법의 설계도를 펼쳐놓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발작버튼 괴물들이 도시를 습격한 지 벌써 삼 년째. 경찰청은 헤이볼 마법사 집단에서 제공한 방패 마법으로 간신히 괴물들을 막아왔지만, 이젠 공격 수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라무의 파이어볼이 바로 그 해답이었다.

"이번엔 정말 대박이 날 거야."

라무는 설계도 마지막 장을 넘겼다. 파이어볼의 위력, 사거리, 마나 소비량까지 완벽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시보드 연동이었다. 경찰청장들은 숫자를 좋아했다. 얼마나 많은 괴물을 막았는지, 어떤 방패가 가장 효과적인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 덕분에 방패 마법은 큰 성공을 거뒀다.

"포코, 잠깐 시간 있어?"

대시보드 기획을 담당하는 마법사 포코가 고개를 들었다. 늘 그렇듯 그녀의 책상은 온갖 수치와 그래프로 가득했다.

"파이어볼 마법 대시보드 연동 좀 부탁하려고. 발사된 수하고 괴물에 맞힌 수, 두 개 다 표시되게 해줄 수 있어?"

스튜 팀장의 질문

포코가 메모를 하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라무."

팀장 스튜였다. 그는 헤이볼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마법사 중 한 명으로, 십오 년간 온갖 마법 프로젝트를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그의 로브에는 수많은 프로젝트 배지가 달려 있었고, 그중 몇 개는 이미 빛이 바래 있었다.
"기존 방패 마법 대시보드 본 적 있죠?"
"네, 당연히요."
"거기엔 뭐가 표시되던가요?"
라무는 잠시 생각했다. "괴물을 막은 횟수요."
"맞아요. '막은' 횟수. 방패를 펼친 횟수가 아니라." 스튜는 라무의 설계도를 가리켰다. "그런데 파이어볼은 발사된 수와 맞힌 수, 두 개 다 보여주겠다는 거죠?"
"네, 그게 더 자세하잖아요. 명중률도 계산할 수 있고."
스튜가 고개를 저었다. "더 자세한 게 항상 좋은 건 아니에요. 경찰청 사람들은 이미 3년 동안 방패 대시보드에 익숙해졌어요. '시도한 횟수'가 아니라 '성공한 횟수'를 보는 데 말이죠. 거기다 갑자기 파이어볼만 발사 횟수까지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요?"

보이지 않던 그림

라무는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워지겠네요. 왜 방패는 시도 횟수를 안 보여주는데 파이어볼은 보여주냐고 물을 거고..."
"맞아요. 그러면 우리가 방패 대시보드도 수정해야 할 수도 있어요. 방패를 펼친 전체 횟수까지 추가로 표시하게. 그럼 포코 씨 작업량이 두 배가 되는 거죠." 스튜가 포코를 힐끗 보았다. 그녀는 이미 피곤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스튜가 계속했다. "경찰청에서 정말 그 숫자가 필요할까요? 방패든 파이어볼이든,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괴물을 처리했느냐'잖아요. 발사는 했는데 빗나간 파이어볼의 수를 알아서 뭘 하려는 걸까요?"
라무는 자신의 설계도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 설계도가 갑자기 좁아 보였다. 자신의 파이어볼만 보느라 숲 전체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파이어볼만 생각했네요."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스튜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자기 마법에 애정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마법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마법 체계를 만들고 있어요. 파이어볼도 중요하지만, 그게 기존 시스템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다시 그린 설계도

그날 밤, 라무는 설계도를 다시 펼쳤다. 이번엔 옆에 방패 마법의 명세서도 함께 놓았다. 두 마법을 나란히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방패는 '방어'라는 하나의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막았으면 성공, 뚫렸으면 실패. 단순했다. 파이어볼도 마찬가지였다. 맞혔으면 성공, 빗나갔으면 실패. 
발사 횟수는 마법사의 실력을 재는 지표일 수는 있어도, 괴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데는 의미가 없는 숫자였다. 경찰청장이 필요한 건 "오늘 몇 마리를 처리했는가"였지, "오늘 몇 번을 시도했는가"가 아니었다.
라무는 설계도의 대시보드 항목을 지우고 다시 썼다.
대시보드 표시 항목: 파이어볼로 처치한 괴물 수
참고: 기존 방패 마법 정책과 일관성 유지

균형

일주일 후, 라무의 파이어볼 마법은 경찰청에 정식으로 납품되었다. 대시보드에는 방패로 막은 괴물 수와 파이어볼로 처치한 괴물 수가 나란히 표시되었다. 두 숫자는 서로를 보완하며 완벽한 그림을 그려냈다.
스튜가 라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요. 이제 진짜 마법사가 됐네요."
"진짜 마법사요?"
"화려한 마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조화로운 마법을 만드는 사람. 그게 진짜 마법사죠."
라무는 대시보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의 파이어볼은 여전히 강력했다. 다만 이제는 그것이 혼자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힘이라는 것도.
창밖으로 또 다른 발작버튼 괴물이 나타났다. 경찰관이 방패를 펼쳤고, 라무의 파이어볼이 날아갔다. 화염이 괴물을 감쌌고, 대시보드의 숫자가 하나 올라갔다.
완벽한 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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