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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재택근무자들이 1박 2일을 보내면 무슨 일이 생길까?

by haevoler 2026. 4. 7.

회사에는 주로 차를 타고 출근한다. 가는 길에 잠깐 나오는 구간이 있는데, 미국 여행 때 봤던 실리콘밸리 도로 풍경과 묘하게 닮았다. 덕분에 마치 실리콘밸리로 출근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 회사는 5년 전에 이직한 곳이다. 재택근무가 기본이라 대부분 출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회사 사람들이 아직도 어색하다. 게다가 최근 대규모 조직 개편까지 있고 나서, 우리 실 안에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였을까, 실장님이 1박 2일 워크샵을 추진하셨다.

 

실에는 네 개의 팀이 있다. 워크샵 첫날에는 각 팀별로 Objective와 Key Result를 도출하는 시간을 가졌다. 화이트보드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정리했다. 우리 팀 발표는 추천을 받아 내가 맡게 됐다. 그 전까지는 편한 마음이었는데, 발표를 해야 한다는 말에 갑자기 긴장이 몰려왔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초집중했다. 팀장님은 ‘왜 저리 심각하지?’ 하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나다. 나는 매사에 진지한 스타일이다.


발표가 끝나고 우리는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바다 근처였다. 도착하기 전에 먼저 바닷가에 들러 잠깐 산책을 했다. 몇 년 만에 보는 바다였다. 파도 소리가 어떤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 거의 잊어버릴 뻔했다.

갈매기가 무척 많았다. 아직 덜 자란 것들처럼 작고 앳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고 싶었다. 비수기에는 사람 없는 해변을 갈매기들이 차지하는구나 싶었다. 비수기가 길어서 동물들이 더 많이, 더 오래 해변에서 놀았으면 좋겠다.

 

해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기 전에 동료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나는 잠시 혼자 바다를 바라봤다. 갈매기도 보고, 저 멀리 지나가는 비행기도 봤다. 내 기분을 알았는지,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무관심 했던건 아니겠지?)


숙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안에는 오락기와 노래방 기기까지 갖춰져 있었다. 어색했던 동료들과 게임을 하니 금세 어색함이 풀렸다. IT 회사라서 그런가, 다들 게임도 잘하셨다.

 

 

저녁에는 다 같이 식당에 모여 고기를 구웠다. 밖에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배가 고픈 것 같아 생선회를 조금 잘라서 줬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원래 나는 강아지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고양이를 키우는데,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고양이도 좋아지게 됐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귀여워서 여자친구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는다.

 

밤이 깊어지자 대부분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은 새벽까지 오락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끝나가는 워크샵의 아쉬움을 달랬다. 내 방은 온돌이었다. 남자 동료와 둘이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자다가 동료가 잠결에 뒤척이며 내 팔을 쳤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코앞에 곤히 잠든 남자 동료 얼굴이 있었다. 그 순간, 여자친구가 몹시 보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어색함이 한풀 가신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신 실장님, 그리고 워크샵을 준비해준 동료분들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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