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볼 2.0
1. 완벽한 기획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괴물들이 떼지어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라무는 화이트보드에 그린 도식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에너지볼 2.0. 단순히 괴물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괴물의 타입을 분석해 맞춤형 특수공격을 날리는 차세대 마법 무기.
"출시일은 다음 달 15일로 잡겠습니다."
마법기획팀 리더 샘의 목소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었다. 라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저버릴 수 없었다. 지난 프로젝트에서 일정을 못 맞춰 곤란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으니까.
회의실을 나서며 라무는 수첩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음 달 15일. 그날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었다.
2. 현실이라는 괴물
"라무님, 죄송하지만..."
바이런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마법개발팀에서 가장 실력 있는 개발자지만, 그조차 시간은 늘릴 수 없었다.
"지금 불의 용 방어막, 얼음 창 프로젝트까지 동시에 진행 중이거든요. 괴물 타입별 특수공격 분석까지 하려면... 솔직히 한 달 반은 걸릴 것 같습니다."
라무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톡, 톡, 톡. 규칙적인 소리가 침묵을 채웠다. 머릿속에서 일정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죠." 라무는 말을 이었다. "일단 모든 괴물에게 동일한 기본 특수공격을 넣어서 출시하고, 타입별 맞춤 공격은 오픈 후에 업데이트하는 거예요."
바이런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라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일정은 지킬 수 있겠다.
3. 테스트의 역습
"잠깐만요."
회의실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테스트팀의 그레이는 항상 침착했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단단한 것이 깔려 있었다.
"그 방식으로 하면 특수공격 테스트를 두 번 해야 합니다. 오픈 때 한 번, 업데이트 때 또 한 번. 기본 공격 테스트 시나리오 만들고, 타입별 공격 테스트 시나리오 또 만들고... 솔직히 말하면 거의 이중 공수예요."
그레이는 자신의 노트북을 돌려 보였다. 화면에는 빼곡한 테스트 케이스 목록이 떠 있었다.
"현재 대기 중인 테스트만 해도 이 정도입니다. 가급적이면 특수공격 테스트를 한 번에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라무는 그레이의 화면을 보다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괴물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4. 보이지 않던 것들
그날 밤, 라무는 책상에 앉아 프로젝트 전체 타임라인을 다시 펼쳐 놓았다. 개발 일정, 기획 검토 일정은 형광펜으로 알록달록했지만, 테스트 일정은 겨우 몇 줄에 불과했다.
'나는 개발쪽만 생각했구나.'
지난 분기에 출시가 밀렸던 순간이동 마법이 떠올랐다. 개발은 완료됐는데 테스트 리소스가 부족해서 결국 한 달이나 늦어졌었다. 그때도 이렇게 테스트팀을 간과했었다.
마법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획자가 있고, 개발자가 있고, 테스트팀이 있다. 그 누구 하나 빠져도 제대로 된 마법은 세상에 나올 수 없다.
라무는 노트에 새로운 일정을 그리기 시작했다.
5. 다시, 함께
"샘 리더님, 죄송하지만 출시일 조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라무는 샘의 자리를 찾았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샘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유는요?"
"개발팀과 테스트팀 리소스를 모두 고려하면, 제대로 된 품질을 위해서는 2주 정도 더 필요합니다. 대신 오픈 후 추가 업데이트 없이 완성된 형태로 출시할 수 있습니다."
샘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바이런과 그레이는 뭐래요?"
"아직 정식으로 말씀드리진 않았는데..."
"그럼 지금 불러요. 같이 애기합시다."
한 시간 후, 회의실에는 네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라무가 새로 짠 일정표를 펼쳐 보이자, 바이런과 그레이의 얼굴이 동시에 밝아졌다.
"이 정도면 타입별 특수공격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겠는데요?" 바이런이 말했다.
"테스트도 한 번에 완벽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레이가 덧붙였다.
샘이 웃으며 일어섰다. "좋습니다. 그럼 수정된 일정으로 진행하죠."
에필로그
출시일 당일, 에너지볼 2.0은 예정대로 세상에 나왔다. 불 타입 괴물에게는 수속성 공격이, 비행형 괴물에게는 전격 공격이 정확히 들어갔다. 테스트팀의 꼼꼼한 검증 덕분에 치명적인 버그도 없었다.
라무는 출시 축하 메시지가 올라오는 팀 채팅창을 보며 생각했다. 완벽한 일정보다 중요한 건, 함께 만들어가는 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창밖에서 에너지볼 2.0이 빛나며 괴물들을 정확히 타격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만든, 진짜 완성품이었다.
'서비스 기획 > 테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부터 실전 테스트도 고려해서 기획하자 (0) | 2025.10.15 |
---|---|
메소드 테스트_출시 전, 유저처럼 써보며 개선점 찾기 (0) | 2023.02.27 |
댓글